톨스토이<무도회가 끝난 뒤>, 플라토노프<암소>
너무 건강과 관련된 분야만 읽은 것 같아
잠시 가벼운 읽을거리가 필요했다.
거실을 탐색하다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를 발견.
어딘가 많이 들어본 듯한 이름에
책을 꺼내 들었다.
책 표지에 작가들의 이름이 많길래
뭐가 이리 많지 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 사람들의
단편소설을 모아 놓은 것이었다.
나는 톨스토이를 보고 뽑아 든 것이었는데.
다 읽고 나니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읽고 나서 바로 썼어야 했는데.
기억에 남는 스토리는
총 한 발로 먼 훗날 복수를 하는 이야기와
맨 마지막의 암소 이야기.
정작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는
크게 감명이 없었던 것 같다.
각 단편소설이 시작되기 전에는
역자들이 해당 작품의 줄거리를 설명하고
짤막하게 평을 해놓은 것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이
각 소설이 끝난 부분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앞에 있길래 순차적으로 읽었는데
요약된 줄거리가 적혀 있으니
실제 본문을 읽을 때 흥미가 떨어지는 듯했다.
결말을 알고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끝에 위치한다면
해당 작품을 다시 한번 복기하면서
전문가의 시각에서는 이런 것들이 보이는구나
이게 이런 의미가 있는 거구나 하고
알 수 있어서 더 좋을 것 같다.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에서는
무도회에서의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와
길거리에서 무자비하게 매를 맞는
차갑고 비정한 이미지가 서로 대비된다.
그 속에 담긴 주인공의 심리 변화와
이후 삶의 변화까지 나오게 되는데
그런 것들은 잘 모르겠더라.
그냥 딱 그 '대비'라는 인상만 남고
어떤 깊은 의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독자의 내공에 따라
작품의 깊이는 달라질 수 있다.
아직까지는 이런 작품을 소화할 만한
안목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러시아 소설, 외국 작품 특유의
번역체와 말투가 어색해서 그랬던 것인지.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보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아무래도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암소>였다.
최근 <아무튼, 비건>을 읽은 후로
비건과 관련된 영상과 자료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그런 시각에서 이 작품을 보게 되었다.
아마 <아무튼, 비건>을 읽지 않고
이 작품을 접했다면
이렇게까지 인상적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다양한 시각을 가지게 되고, 그에 따라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깊이와 시각 역시
더 확장되는 것 같다.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보다
인상적이었던 플라토노프의 <암소>는
새끼를 잃은 어미소의 심리를 자세히
묘사해주고 있다.
주인공인 어린 소년의 시선을 통해서.
자신의 새끼를 빼앗긴 어미소는
주인이 데리고 간 새끼가 돌아오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소년은 암소를 달래주려
먹이도 가져다주고 쓰다듬어 주기도 하지만
'암소는 무관심한 채 미동도 없었다.'
'암소는 가까운 들판에 서서
풀도 뜯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암소는 목을 홱 잡아채어
소년을 뿌리치더니 목젖을 쥐어짜는 듯한
괴성을 지르며 들판으로 달려갔다.
한참을 내달리던 암소는 돌연 반대쪽으로
방향을 돌리더니,
펄쩍펄쩍 뛰어오르는가 하면,
앞다리를 절룩거리기도 하고
머리를 땅바닥에 문지르기도 하면서...'
새끼를 잃어버린 한 생명의
극심한 좌절감과 무력감, 혼란스러움이
세심한 묘사를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몇 달 동안 자신의 배에 데리고 있다가
힘들게 낳아 소중히 기르고 있던 자신의 새끼를
영문도 모른 채 빼앗긴 어미의 심정은 어떨까.
공장신 축산업에서 우유를 생산하는 과정은
이러한 착취와 생이별의 반복이다.
암소는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강제 임신을 당해야 하고
힘들게 낳은 새끼는
낳자마자 인간들에게 빼앗긴다.
송아지가 우유를 먹어버리면 안 되니까..
그리고 송아지 고기는 연하니까.
이러한 분리 과정은
어미와 새끼 소에게 엄청난 외상을 남긴다고 한다.
몇 날 며칠을 목 놓아 운다고 했다.
그 '엄청난 외상'을
플라토노프의 <암소>라는 작품을 통해서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암소는 선로 위에서
기차에 치여 죽고 만다.
기관사는 여러 번 경적을 울렸음에도
암소가 피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게 아니에요. 느리긴 했지만
어쨌든 소는 기관차에서 도망가긴 했어요.
그런데 옆으로 비켜날 생각은 안 하더란 말이죠."
...
"소가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사람들은 죽은 암소를
소고기 시장에 내다 판다.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보다 인상적이었던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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