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동거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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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확신을 좀 더 가지게 해 주었다. 같이 살아도 각방을 쓸 수 있다, 따로 살 때 더 잘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표현해냄으로써 '내가 이상한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다. 자신의 가치관대로 사는 삶은 이렇게 영감을 주기도 하는구나. 덕분에 나의 모습, 나의 생각, 나의 느낌들에 대해 조금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클럽 별로 재미없던데? 나는 혼자서 책 읽는 게 좋은데? 나는 구제 가게 가서 쇼핑하는 게 좋은데? 그런 게 바로 나의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원래부터 동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결혼의 전 단계라는 인식은 있었던 것 같다. 동거란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함께 있고 싶은 마음,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가장 순수하게 발현될 수 있는 형태가 동거인 것 같다. 결혼은 그 이상의 의미가 담기게 되니까. 동거를 해봐야, 같이 살아봐야, 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어떤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의 스텝이 결혼일 필요는 없다. 결혼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서로 사랑해서 같이 살면서, 법적인 보호자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동거와 결혼이 필연적인 인과관계나 상하개념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동거는 동거, 결혼은 결혼이다. 사실상 사람들은 동거를 하고 싶었지만 같이 사는 것을 인정받으려면 결혼을 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결혼을 한 것 아닐까. 자신이 원하던 형태가 아니지만, 그것밖에는 방법이 없으니까. 다른 형태의 '같이 삶'에 대해서는 모르니까. 생각해본 적도 없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냥 결혼하니까.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넓게 사고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것 때문이 아닐까. 내가 원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하고싶은 대로. 사회가 정해준 틀에 끼워 맞추지 않고, 나만의 틀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p.7
[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하면 '했다'라는 것 자체가 성공인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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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하면 그 자체로 성공인 거다. 평가 하지 않아도 된다. 잘했냐, 못 했냐 따
지지 않아도 된다. 그냥 한 것 자체로, 시도한 것 자체로 성공이다. 낯선 영역에 도전하고
새로운 시도를 한 나를 마음껏 칭찬해주자.
p.8
[ 누군가와 함께 하는 선택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가에부터 '
어떻게' 함께 할 것인가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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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모습이 남들과 같을 필요는 없다. 결혼을 하지 않고도 같이 살 수 있고 같이 살아
도 각방을 쓸 수 있다. 통장을 꼭 하나로 합쳐야 하는 것이 아니고,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
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정해진 것은 없다. 사회의 기준대로, 남들처럼 살
필요 없다. 상대방과의 합의 하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마음껏 자유롭
게 살아도 된다. 때로 누군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수는 있지만, 결국 내 삶에 대한 책임,
그 결과는 오롯이 내가 감당하고 책임져야 하기에.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정만춘>
p.25
[ "왜 결혼이 아니라 동거인가?" (...)
이상한 질문이다. "왜 동거가 아니라 결혼인가?"라고 묻고 싶어진다. 결혼은 '함께 있다'라
는 것보다 훠씬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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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하다. 왜 동거가 아니라 결혼인가. 동거는 그냥 함께 있는 것이고 결혼은 그 이상의 의
미들, 이를테면 사회가 정해놓은 제도와 틀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뒤의 가족들과도 관계를 맺고 어느 정도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인
데. 대부분의 결혼하는 사람들의 동기는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는 것 아닐까? 그 이
후에 자신이 지게 될 책임과 시댁, 처가와의 관계까지 생각했을까? 그게 너무 좋아서 결혼
을 한 걸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것은 '이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는 단순한 생각인데, 사회적으로 이를 용인 받으려면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이라는 형태로 발현이 된 것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동거야
말로 '이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순순하게 발현될 수 있는 형태인 것 같다.
+ p. 26
[ 결혼은 '함께 있겠다'라는 약속보다 더 큰 무엇이라고. 상대와 하는 포옹이라기보다는 사
회와 하는 악수에 가깝다고 (...)
함께 있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을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이루는 거은 함께 있기였다. 그냥
함께 있기. ]
p. 40
[ 우리가 잘 맞는지 가늠할 수 있었던 건 역시 '동거'였다. 함께 살아보고 나서야 나는 내
가 그의 어떤 부분을 가장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고, 더불어 내가 무엇을 참을 수 없는지도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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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결국 '같이 사는 게 잘 맞을까?'라는 걱정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같이 살아 보는 것'이 가장 좋은 해답이다. 이 가게의 짬뽕이
맛있을지 어떨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짜장면을 먹고 탕수육을 먹는 것은, 이 가게 전반의 요
리 실력을 짐작해 짬뽕의 맛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해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직접 짬뽕 국
물을 떠 먹어 보고 면발과 야채를 먹어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 입맛 다 똑같다고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선호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니까. 내가 직접 먹어봐야 안다. 내 입으로 들어오고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나서야 이
집 짬뽕은 칼칼해서 좋다던지, 나에게는 너무 맵다던지, 면발이 탱탱하다던지, 너무 쉽게
끊긴다던지 내가 이 짬뽕에서 마음에 드는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알 수 있다. 짬뽕의 맛이
궁금하다면, 먹어보면 된다.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정만춘>
p. 46
[ 그들을 만나며 나는 내 세계의 범위를 조금씩 넓혔다. 예컨대 이제까지 내게 세계는 -10
부터 +10까지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6으로 혹은 4로 가기만 해도 나는 내가 오드'Odd'가 될
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나도 '평균 애호증'이었던 걸까. 그래서 나는 범위를 -100에서 +100
으로 넓히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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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의 범위를 넓히고 싶다. 더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기
위해서. 그리고 나 자산의 삶 역시 부지불식간에 심어진 특정한 틀 안에 규격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 원하는 삶과 가치를 좇을 수 있도록 용기 있게, 창의적으로 도전할 수
있게. /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데 조금 더 용기를 내야겠다.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 역시 아주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니까. 친구들을 보아도
그렇다. 꼭 친한 친구가 될 필요는 없고 자주 보아야만 친한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낯
선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 더 용감해지자. 낯선 분야의 책을 읽는 것
도 마찬가지 - 예술, 과학 등
p. 91
[ 사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거를 하느냐, 동거가 얼마나 전통적인 관계인가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포인트인 줄은 잘 모르겠다. 제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
으면 되는 것 아닌가. 비슷한 일상을 영유하는 사람이 백 병인가, 십만 명인가보다 내가 내
삶을 잘 쥐고 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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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평균치로부터 얼마
나 떨어져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대로 살
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면. 설령 피해를 조금 준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까지 감수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마찰까지
견뎌내 가면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가고 있는가. 내가 오롯이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하고 있는가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정만춘>
p. 94
[ 독거노인이 그렇게 걱정된다면, 사랑의 도시락을 하사하는 대신 서로 돌봐주는 노인 가족을 인정해 주면 어떨까. 가족이 그렇게 만들고 싶다면야, 가족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욱여넣는 대신 가족의 범위를 넓히는 게 현명한 방법 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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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형태를 정해놓고 '이 형태를 갖춰야만 가족이야!' 하는 것보다, 그 가족의 형태를 다양화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생각의 전환. 무엇을 상수로 두고 무엇을 변수로 둘 것인가.
p. 98
[ 우리는 이 세계 안에서 겪은 만큼만 넓어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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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을 많이 해서 넓어지는 것이 왜 중요할까. 더 많은 삶의 형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 나의 행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되니까. 가족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하나밖에 모른다면, 그 틀 안에 나를 욱여 넣어야 한다. 하지만 가족이 되는 다양한 방법을 안다면 그중에서 내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 물론 단점도 있겠다. 인간은 자신이 살 수 있는 쨈의 종류가 다양할 때보다, 하나 또는 두 가지만 있을 때 더 만족감을 느낀다고 하니.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것이 반드시 만족감이 더욱 높아진다는 것은 아니겠다. 때로는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다. 어느 것이 나에게 맞는 것인지 '생각'을 해야 하니까. 또 경험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다른 방법들이 있다는 걸 아는 상태에서 '나는 복잡한 거 싫어, 그냥 이렇게 할래'하고 선택하는 것과, 그 방법밖에 몰라서 그것을 택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니까.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정만춘>
p. 149
[ 의외로 내가 이과생과 꽤 잘 맞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논리적이고, 직접적인 대화법이 좋았다. 은근한 애정 표현을 낯간지러워하고, 대화할 때 공감하기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화법을 가진 내게 딱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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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없다. 각자의 취향과 성향이 있을 뿐. 누군가 고민을 얘기할 때에도 공감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의미가 있다. 나의 느낌, 나의 취향에 대한 확신을 좀 더 가져도 될 것 같다. 남들이 어떻게 신경쓰느냐에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 '나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뭐가 좋은가?'에 더 귀를 기울여 보자.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게 나니까. 내가 좋아하는 대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면 된다. 그게 나다.
p. 199
[ 아무도 어떤 이름으로 정의 내리지 않은 경계선에 서있으면 사람들이 묻는다. "너는 이쪽이냐, 저쪽이냐." (...)
핑크색도, 보라색도, 녹색도, 푸른색도 아닌 어느 경계에 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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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어느쪽이라고 정할 필요는 없다. 꼭 양 극단으로 가지 않아도, 어느 한쪽에 포함되지 않아도 괜찮다. 짬뽕과 짜장면을 둘 다 동일하게 좋아하는 선에 서도 괜찮다. 경계에 서는 것 역시 하나의 유형, 하나의 방식이다. 답을 꼭 내려야만 할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면, 시간을 좀 주어도 괜찮다. 지금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그 고민이 아직 무르익을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정만춘>
p. 227
[ 많이 쓴다 -> 많이 벌어야 한다 -> 더 많은 시간을 팔아야 한다 -> 억울한 심정이 되어 더 많이 쓴다 -> 더 많이 벌어야 한다 -> (무한 반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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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줄이면 조금만 벌어도 된다. 적은 것에 만족할 수 있으면 만족할 수 있는 대상이 늘어난다. 많이 사고 많이 쓰는 것보다 하나를 사더라도 고민을 하고, 정말 필요한 것인지 따져보는 것, 정말 내 마음에 드는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는 것, 그런 과정을 거쳐 산 물건이라면 만족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려해 볼 요소는 많다. 개인적인 취향, 환경에의 영향, 지구 반대편 노동자의 생활 등.
p. 249
[ 동거는 결혼을 위한 준비가 아니고, 완벽한 연인을 찾기 위한 실험도 아니며, 미성숙하고 되바라진 청년의 일탈은 더더욱 아니다. 동거는 그 자체로 완성된 메인 디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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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니까 사귀는 것처럼, 같이 살고 싶으니까 동거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다른 관계로 변화될 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것이다. 쌀은 밥이 될 수 있고 밥은 떡이 될 수 있지만, 밥이 떡이 되기 위한 전 단계는 아닌 것처럼.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정만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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