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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거/책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난 - 내가 좋아하는 걸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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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11 ~ 16

서울대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나선 이야기라길래 바로 집어들었다. 그는 어떤 용기가 있었길래, 무슨 생각으로, 무엇이 그토록 좋아서 서울대생임에도 '불구하고' 시골행을 택한 것이었을까. 택할 수 있었을까.






유지향,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난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밑바탕에는 스스로가 못났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보통으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보통으로 있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특별해지려고 한다. 자신은 특별하고 우수해야만 하고, 그렇지 않다면 특별히 나쁘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난, 유지향 > 중에서


⭐️
그랬구나. 내가 나를 못났다고 생각해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아서 계속 남들보다 뛰어나려고, 특별해지려고 했었구나.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면 굳이 남보다 뛰어나야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있는 그대로 온전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게 마음을 먹는다고 바로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계속해서 의식하고 깨어있는 채로 내 모습을 관찰하고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일지 생각해봐야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알게 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나를 아는 것이 먼저다.


그날 이후로 ‘삶에 주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에어컨을 끄고 싶은 게 환경을 지키고 싶어서인지, 에어컨 바람이 싫어서인지 살폈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싶은지, 입맛에 맞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고 싶은지 살폈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은 물론, 기분이 나쁠 때 어떻게 하면 괜찮아지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 <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난, 유지향 > 중에서



“뭐든 잘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던 내가 공동체에 와서 “그건 할 줄 몰라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뭘 좀 못 한다고 해서 남들이 나를 미워하는 게 아니었다. 잘해야만 예쁨받는 줄 알았는데, 빈 구석이 있으니 오히려 더 편하게 대해준다. 내가 잘하는 것과 남이 잘하는 게 다르다고 받아들이니까 함께 어울릴 수 있었다. 일을 잘 못 하는 사람을 만나도 무시하기보다 이해해줄 수 있는 마음도 생겼다.
- <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난, 유지향 > 중에서







책모임에서 여자 아이가 틴트 살 돈이 없어서 싸인펜으로 빨간 입술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치마를 입고 다녔던 내게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 <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난, 유지향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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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구조 속에서 나도 모르게 공조자가 되었을 수 있다. 그럴 의도가 없었고 알지도 못했지만,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좋아함이 드러난 부분

빗소리, 새소리 들으면서 혼자 나물 뜯을 때면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울 수가 없다.

딱 내가 찾던 시골살이야!’라며 부러워했다. 촌스럽게 살고 싶은 꿈

무엇보다 나무 이름, 풀 이름을 배우러 숲에 나가는 게 정말 좋았다. 초록에 둘러싸여 흙을 밟고, 나뭇잎을 만지고, 꽃과 열매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자연에서 절로 난 것을 먹을 만큼만 가져다 먹는 게 좋았다.

작은 보람과 기쁨이 별처럼 많은 동네에서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변산살이 한 달 만에 확신이 생겼다.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고, 남이 아닌 내가 진정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변산에서 지내기로 한 게 내 행복을 위한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직접 구해온 잔가지 묶음을 들고 돌아온 저녁, “오늘은 소나무 장작 2개, 감나무 장작 2개, 잔가지 4개, 솔잎 조금!”이라며 정성스레 불을 뗐다 나무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바라보며 ‘저 나무도 열심히 물을 마셨겠구나’ 하며 꼬록꼬록 소리를 떠올렸다.
직접 해 온 나무로 뜨끈하게 데워진 방바닥의 온기를 느끼며 잠들었던 그날 밤, 밤새 공부하고 A학점을 받았던 날보다 훨씬 더 뿌듯했다.

따끈따끈한 바닥에 발을 디딜 때마다 보람차고 신이 났다.

거칠게 후다닥 해치우는 일을 잘 못하는데 감자 캐는 일은 조심스럽게 해도 돼서 나랑 잘 맞았다.

대기업에 들어가서 기계 부품처럼 살기도 싫고, 빽빽한 건물 숲, 자동차와 사람들 속에서 살 자신이 없었다. 아빠가 원하는 사회생활을 할 자신은 없지만 농촌에 가서 살 용기는 있었다.

무엇이 되고 싶은가보다 어떻게 살지 고민했던 십 년이었다. 취미와 취향을 갖고 싶었던 20대 초반, 촌스럽게 흐뭇했던 중반, 생태주의, 여성주의, 동물권을 일상에 녹여내는 후반을 보냈다. 한 해, 한 해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렀다. 뜻밖에 찾아왔던 희로애락을 기꺼이 누렸다. 많이 아팠고, 그만큼 다른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버리고 도망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내 곁에는 소중한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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